새해 첫 날, 난민들의 따뜻한 집밥 레시피를 공개합니다

2019년의 대명절 설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모여 명절 음식도 만들고, 옹기종기 앉아 떡국을 먹으며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것을 실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요리하고 나누어준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을 지닙니다. 누군가를 정말 아끼고 챙겨주고 싶을 때 우리는 정성을 다해 요리를 시작합니다. 누구를 위해 또는 무엇을 위해 요리하냐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정성도 달라질 수 있고, 누구와 함께 먹느냐에 따라 같은 맛도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때, 그 사람과 함께 먹었던 음식과 식사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예멘에서 온 난민 모나(Mona) 가족의 식사 시간

지구 건너편 전쟁 또는 자연재해로 고향을 잃은 난민들에게도 어김없이 새해는 밝고, 명절은 찾아옵니다. 그리고 일년 중 가장 마음이 아픈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던 그 따뜻했던 시간이 떠오르면서, ‘고향의 맛’이 그리워지기 때문이죠. 옥스팜은 난민들의 ‘고향의 맛’인 전통 요리 레시피를 공유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쫓기듯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러분도 난민들의 ‘고향의 맛’ 레시피를 따라 해보며, 그들의 그리운 시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응원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아다시(Adasi)
이란의 전통 렌틸콩 수프 요리

아다시의 요리법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인도, 이란, 파키스탄 등지에서 전쟁이나 박해를 경험한 망명 신청자들이 꼽은 요리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아다시와 함께 쌓은 추억은 모두 다르겠지만, 그들과 가족들의 삶에 중요한 시간을 함께 해줬던 요리라는 것은 똑같답니다.

볼라니(Bolani)
아프가니스탄 전통 달 모양 팬케이크 요리

옥스팜은 유럽 전역(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세르비아 등)에 머물고 있는 난민과 이주민들을 위해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옥스팜 현지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법적 지원, 보호 및 심리사회적인 지지 등의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파슐레(Fasulye)
시리아 전통 콩 요리

옥스팜은 난민들에게 영양가 있고 문화적으로도 적합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세르비아에 머물고 있는 다양한 출신의 난민과 이주민들이 제공해준 요리 레시피를 수집하고 분석했습니다. 이를 통해 각 유럽 정부들이 주관하는 이주민 접수 센터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에게 더 따뜻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하루 세끼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자르(Gajar)
인도 전통 스튜 요리

쿠쿠 십자미니(Kookoo Sibzamini)
이란 전통 감자 패티 요리

카불리 필라프(Kabuli Pilav)
아프가니스탄 전통 쇠고기 볶음 요리

코레쉬트 루비아(Khoreshte Lubia)
이란 전통 고기 요리

소셜 미디어에 여러분이 실제로 도전해본 난민들의 ‘고향의 맛’ 레시피와 요리 사진을 자유롭게 공유해보세요. 또는 좀 더 창의성을 담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셔도 좋습니다. 다양한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ATasteOfHome을 사용해 전 세계 옥스팜 친구들은 어떤 레시피를 따라 만들어 보았는지 확인해보세요.


우리의 희망찬 새해처럼, 누군가의 새해도 희망차고 따뜻하길 바라며 옥스팜은 오늘도 긴급구호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옥스팜 현장 활동가의 다이어리

필리핀 출신의 두오이 암필란(Duoi Ampilan)은 전 세계 긴급구호 현장 곳곳에서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긴급구호 활동가로서 활동해왔습니다. 두오이는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군가를 돕는 일이 왜 그에겐 그 어떤 일보다도 값지고 중요한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 본 글은 현장활동가 두오이가 실제 자신의 일기장에 쓴 글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Dear Diary(나의 일기장에게),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 되는 인도주의 현장에서 정말 부끄럽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요즘이야.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활동가들이 얼마나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는지, 매일 어떤 두려움에 직면하고 있는지 또 그들이 구호활동가로서 맹세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인의 삶을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아.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봉사’라는 이름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매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지 말이야.

Dear Diary, 나는 옥스팜 긴급구호 현장 활동가로서 가장 위험하다고 손꼽히는 국가들에서 근무해왔어. 남수단이 독립하기 전후, 가장 예민하던 시기에 12개월간 근무를 하면서 내 심장은 매순간 뜨겁게 뛰었던 것 같아. 그 곳에서 여러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매일같이 마음이 무너져내렸지. 오히려 내가 이 일을 더 사랑하게 만든 곳이기도 했어.

이틀 동안 딱 한 번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되니? 마을에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은 물을 구하러 몇 시간씩 걸어야만 했지. 남수단 고그리알 동부지역(Gogrial East)의 아메타켈(Amethaker) 마을 아동들은 3주에 한 번 간신히 몸을 씻을 수 있었어. 6개월 동안 지속된 심각한 가뭄으로 그 어떤 우물도, 강도 다 말라버렸으니까.

가뭄으로 말라가는 마을들에 우물을 파기 위한 수맥탐사 시추를 하던 날, 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주민들의 환호성 속에서, 목 말라가는 아이들의 고통을 멈출 수 있게 될거라는 그 때의 벅찬 감정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더라. 절망만이 가득했던 주민들의 어두운 얼굴에서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걸 보았거든. Dear Diary,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런 현장에서의 기쁨은 우리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신뢰로부터 시작되는 게 사실이야. 우리를 믿고 응원해주는 후원자,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나눔이 결국 여기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는 도움의 손길로 꽃피게 되니까.

Dear Diary,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 남수단에서 전갈의 독침에 찔린 적도 있었고, 말라리아와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오간 적도 많았지만 단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만약 몇몇의 잘못된 활동가들 때문에 사람들이 더이상 우리의 활동을 믿지 못하고, 지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후원을 이어가지 않게 된다면, 그럼 내가 있는 이 곳 긴급구호 현장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끊임없는 질문들이 이어지는 요즘이야. 긴급구호 현장에는 지금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픈 것 같아.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했던 에볼라 사태를 기억해? 그 당시 본부에서 에볼라 현장에 파견을 가달라고 연락이 왔었어.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컸던 나머지 처음에는 거절을 했지. 혹시 내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 무섭기도 했거든. 하지만 곧 내 인생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어. 그 이후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지. 그렇게 해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게 되었어. 서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나에겐 주홍글씨가 따라다녔지. 내가 서아프리카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아무도 내 곁에 다가오거나 만지려고 하지 않았거든.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편견들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 후 2016, 2017년에는 예멘에서 활동을 하기로 했어. 그땐 심지어 나를 제일 잘 아는 가족들과 친구들마저도 내게 직업을 바꾸면 안되겠냐고 한참을 설득하더라고. 실제로 끊임없는 폭탄소리와 밤낮으로 달라지는 생사 소식으로 우울한 전쟁터에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았어.
Dear Diary,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폭격으로 고립된 아덴(Aden) 지역에 갇혀 있는 상황이었어. 그땐 처음으로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던 것 같아. 돌아가신 아버지와 슬퍼하고 있을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어도, 절대 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Dear Diary, 비록 몇몇 구호활동가들이, 도움이 필요한 긴급구호 현장에서 거짓으로 활동해왔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구호 현장에서 ‘산이라도 움직이겠다’는 온 신념을 다해 활동하고 있을 진심어린 구호활동가들을 잊지 말아줘. 또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재난 속에서 누군가를 돕다 세상을 떠난 영웅들까지도 함께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내 심장은 평생 긴급구호 현장에 있을거야. 분명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가 아닐테니까 말이야.
인류를 위해 평생을 바쳐 봉사할 수 있는 것만큼 커다란 행운이 또 있을까.

Note from Oxfam
혹시 두오이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feedback@oxfam.org.uk로 메일(영문)을 보내주세요. 두오이에게 꼭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If you’d like to send Duoi a message, please email feedback@oxfam.org.uk and we will pass your message on.

그림으로 전하는 인도 소녀 이야기 “조혼을 멈추고 소녀들의 꿈을 찾아요!”

이야기 #1. 더 큰 세상을 향한 그녀의 날갯짓

우르미라는 16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며 3번의 유산을 겪었습니다. 유일한 수입원인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가정을 꾸리기도, 병원을 갈 수도 없었죠. 결국 직접 일을 하며 힘을 보태기로 한 그녀에게 인도 사회는 차갑기만 했습니다. 남편의 반대는 가정폭력으로까지 이어졌죠.
그럼에도 그녀는 옥스팜 여성기술교육 에 참가하며 양계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간 배운 기술들로 성공적인 양계장을 운영 중입니다. 남편 역시 기쁘게 응원해주는 요즘, 옥스팜 사업 챔피언으로 뽑혀 지역 여성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있답니다.

이야기 #2. 축하해 나의 챔피언, 사랑해 나의 여동생

HerStory 두번째 주인공은 인도 델리 킥복싱 챔피언이 된 돌리와 그녀의 오빠 아밋입니다.
인도 델리의 돌리와 아밋네 마을은 가부장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곳이었습니다.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소녀들은 7학년이 지나면 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그 곳에서 운동선수의 꿈을 키운 돌리, 그런 여동생을 혼내는 부모 앞에서 오빠 아밋은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고민하던 아밋은 인도 옥스팜 사무소와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는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매일같이 인도 소녀들이 겪는 인권 침해와 성차별에 대해 알게 됐죠. 당연히 여겼던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밋은 가족들부터 변화시켜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돌리의 체육관 수업을 위해 일하며 돈을 모으기도 했고, 성평등 인식 개선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돌리는 운동을 시작했고, 최근 델리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거머쥐게 되었답니다.

이야기 #3. 시바라트리, 어둠 속의 환한 빛이라는 내 이름처럼

15살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시집가던 날, 시바라트리는 깨달았습니다. 부모님과 영영 떨어져 남편의 집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린 그녀에겐 쉽지 않은 변화였습니다. 결혼 후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은 그녀. 그 중 4명의 자녀만이 살아있습니다. 어린 나이의 출산으로 아이 역시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 아이를 낳고 싶다는 그녀에게 부모님은 “남편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아내로서 선택권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절망에 빠졌던 시바라트리는 새로운 결심을 했습니다.
옥스팜 인도와 지역 공동체의 도움으로 소녀들의 조혼의 위험성을 알리는 여성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마을 이웃들과 함께 소녀들의 조혼과 가정 폭력을 방지하는 캠페인을 펼쳤죠. 활발한 활동 끝에 지역 학교 감시 위원회에 임명되어, 모든 소녀들이 조혼을 강요받지 않고 제 때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남성 지배적이었던 곤드족 마을에 그녀의 빛줄기가 환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이야기 #4. 내가 소녀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이유

18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기탄잘리는 그토록 되고 싶던 간호사의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가족들을 부양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죠.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돈을 벌어오던 그녀는, 우연히 옥스팜의 청소년 모임에서 강의를 듣게 되었죠. 누군가를 돕는 간호사의 꿈 대신에, 자신처럼 홀어머니 밑에서 교육받지 못하는 소년, 소녀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기탄잘리는 지역 소녀 공동체의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마을 소년, 남성들과 함께 만연한 가정폭력, 알콜중독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공공장소에 포스터도 만들고, 그림 전시와 책을 만들며 소녀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야기 #5. 모두의 응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마을 소녀들처럼 그녀 역시,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이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었지만, 그녀의 언니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설득하려는 구르바리에게, 아버지는 “너는 우리의 소유물이야” 꾸중하며 결혼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만난 옥스팜 성평등 수업. 사회의 관습대로 정해지는 인생이 늘 옳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구르바리는 어머니께 옥스팜 성평등 수업에 참가하기를 설득했습니다. 결국 수업에 참가한 어머니는 그제서야 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르바리의 편에서 나머지 가족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제 미래는 이제 저에게 달려 있어요!” 구르바리는 일찍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지 않고, 공부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하죠. 요즘 그녀는 자신의 미래를 계획해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답니다.

전 세계 여성과 소녀들을 향한 폭력과 차별이 멈출 수 있도록 #SayEnough!
옥스팜과 함께 그녀들의 변화에 응원을 보내주세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VS 푸어 아시안?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의 불평등 이야기

한국에서는 10월 25일 개봉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개봉 첫 주에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휩쓸었다고 합니다.


영화 개봉회에 참석 중인 콘스탄스 우
사진 출처: 게티 이미지

이름 그대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
즉 ‘미치도록’ 부유한 아시아 최상류층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주요 배역에 모두 아시아계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할리우드에서 조연 또는 악당으로만 등장하던 아시아인들의 유리 천장을 깼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SNS에서는 금빛 피부를 가진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open, 버리자는 #GoldOpen(골드오픈) 캠페인이 퍼지기도 했죠. 영화는 무려 3주 동안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흥행 기록을 남겼습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들의 일상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싱가포르 부동산 재벌가 출신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런던 최고급 호텔에서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홀대하자, 그 자리에서 전화 한 통으로 호텔 전체를 사버리기도 하죠.


Photo by Sanja Bucko
© 2017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and SK Global Entertainment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보다 더 부유한’ 아시아 최상류층의 이야기는 과연 실제로도 존재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점점 더 늘어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들


사진: Eleanor Farmer, Oxfam GB/International

영화 속 배경인 싱가포르는 쇼핑몰의 천국입니다. 디자이너 편집숍부터 프라다, 구찌, 루이비통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죠. 이는 홍콩, 방콕, 자카르타 등 다른 아시아 도시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중 몇몇 국가들은 한때 평등한 경제성장 모델을 갖췄다 평가받기도 했지만, 부의 불평등은 쉴 새 없이 증가해왔습니다. 옥스팜의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억만장자들의 숫자는 미국과 유럽의 수를 훨씬 능가합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백만장자, 억만장자들의 고향이 바로, 여기 아시아·태평양 지역입니다.


이미지 출처: BBC

2018년 포브스(Forbes)가 찾아낸 2,208명의 억만장자들 중에서 미국은 585명의 억만장자가 살고 있는 억만장자 보유국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중국 본토에는 373명의 억만장자가 살고 있죠.

하지만 옥스팜이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S)가 발표한 “2017 세계 부(富)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총 600명의 억만장자가 살고 있는 것으로, 1위인 북미 지역을 추월했습니다.(2018년 현재는 784명)

또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초고액 자산가(*보통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10억 이상 보유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전 세계에서 순자산이 높은 개인의 34.1%가 아시아 출신이라고 하니, 아시아에 집중된 엄청난 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부의 30.8%를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반면 북미 지역은 28.2%를 차지하고 있죠.

중국?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들의 집합소?


베트남 하노이의 명품 쇼핑몰
사진: Sam Tarling, Oxfam GB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영화에서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미국인 등 다양한 중국계 출신들이 등장합니다. 그들 가문의 전통과 명맥을 지키면서도 부를 맘껏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실제 현실에서도, 가장 많은 수의 억만장자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는 중국입니다.


이미지 출처: BBC

미국과 유로존이 금융 위기를 겪고 회복기를 보내는 동안, 중국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8~11%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국 출신 백만장자, 억만장자의 수는 끊임없이 늘어났습니다.

지난 수년간 아시아 지역은 눈에 띄는 성장을 보였다.
중국과 인도의 신흥 시장은 GDP 및 주식시장 성장에 힘을 입었고,
일본, 홍콩 및 싱가포르는 그들의 안정적인 시장을 통해
꾸준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 치라 타크랄(Chirag Thakral), 글로벌 IT 컨설팅 회사 Capgemini 시장정보국장 –

1%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vs 나머지 99% 아시안

가진 자들의 부는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갖게 되는 공식은 실제로도 성립하는 듯 보입니다. 작년 중국 내 창출된 소득의 79%는 상위 1%의 부자들이 차지했으며, 인도에서는 소득 73%가, 태국에서는 소득 96%가 상위 1%의 부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가진 자들은 계속 더 갖게 된다” – 초고액 자산가들의 재산 증가율/ 이미지 출처: BBC

한국 역시 ‘백만장자’의 숫자와 평균 자산은 작년보다 늘었습니다. 상위 1%의 인구가 국토의 55.2%를,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50%를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었죠. 크레디트 스위스는 “2018 세계 부 보고서”에서 한국을 ‘성장 스타(Growth Star)’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부는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서도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크레이지 푸어 아시안’,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놀랄만큼 많은 억만장자들이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그 명암 역시 짙습니다.


인도네시아 빈민촌과 부유층 아파트촌

매년 100명이 넘는 새로운 아시아인 억만장자가 등장하는 반면에, 최소 7천만 명의 아시아인들은 당장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합니다.

아시아 지역의 많은 나라들에서 부의 불평등이 우려할 정도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 스타파 탈푸르(Stafa Talpur), 옥스팜 아시아 불평등 캠페이너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 근로 빈곤층 2/3 이상이 아시아에 속합니다. 이들은 매일 장시간 일함에도 불구하고 하위 소득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특히 여성들의 경우 남성이나 타지역 여성에 비해 평균 30% 더 적은 보수를 받습니다. 또 무급 가사노동인 집안일과 육아에는 평균 2.5배 더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때문에 가족들을 부양하는 여성 가장의 경우, 취약계층 중 가장 취약계층에 속합니다. 경제적 불평등 내에서 젠더 불평등 역시 눈에 띄는 문제입니다.

베트남 노동자들의 모습/ 사진: Oxfam GB

“현재 홍콩에서 크레이지 푸어 아시안 1명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명의 재산만큼을 벌기 위해서는 총 6,800년이 걸립니다.”


베트남 / 사진: Adam Patterson/ Oxfam

‘미치도록 부유한 아시아인들(Crazy Rich Asians)’의 화려한 삶, 그 화려함 만큼 길게 그늘진 ‘미치도록 가난한 아시아인(Crazy Poor Asians)’들의 삶.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포스터 VS 크레이지 푸어 아시안 (출처: 영화 공식 홈페이지/ 옥스팜 아시아)

과연 이 격차는 어떻게 줄어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린, 아시아의 공정한 세상을 그려갈 수 있을까요?
옥스팜은 ‘가난이 없는 공정한 세상’을 위해 매년 다보스포럼에서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하고, 157개국 정부를 대상으로 불평등 해소 실천 지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또 기업의 포용적 경영모델을 촉진하는 보고서를 발간하며,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활동을 촉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긴급구호 현장에 희망의 씨앗을 심다

자연재해나 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긴급구호 현장.
수많은 사상자들도 있지만, 그 곳엔 역시 생존자들도 있습니다.
가족과 집도 모두 잃고 목숨만 부지한 생존자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찾아줄 수 있을까요?

인도네시아 중부 술라웨시 재난 현장/ 사진: 옥스팜

수십 년간 긴급구호 현장에서 활동을 펼쳐온 옥스팜에겐 중요한 고민이었습니다.
옥스팜은 긴급구호 현장에서 식량 및 생계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상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생존자들의 ‘식량’과 ‘생계’에 주목했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장기적인 미래를 그려갈 수 있도록,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긴급구호 현장의 식량·생계 프로그램(EFSVL)

옥스팜 긴급구호 현장의 식량·생계(EFSVL) 프로그램은 남아있는 생존자들이 과연 충분한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활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더 나아가 옥스팜의 대응을 통해 장기적인 생계 유지까지도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현장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각 지역에 적합한 세부 활동들을 기획합니다.

그렇다면, 옥스팜 EFSVL 프로그램의 접근 방법은 뭘까요?

방법1. 시장 활성화시키기

예멘 내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있는 주민/ 사진: 옥스팜


무너진 지역이나 인근에 위치한 시장들. 옥스팜은 이 시장들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우선 ‘시장 분석’부터 시작됩니다. 현재 지역 시장의 중요한 제약 조건들(환경, 법, 물류 유통)을 파악하고, 잠재적인 기회들을 찾으며 어떻게 시장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죠. 또 무역업자 및 시장 관계자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지속가능한 계획을 세웁니다.

DR 콩고의 지역시장 모습/ 사진: 옥스팜

시장 활성화는 단지 상인들을 배불리겠다는 목적이 아닙니다. 시장을 통해 생존자들에게 구호물품 외에도 필요한 다양한 물건들이 즉각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시장 활성화에 필요한 지역 사업이나 금융 서비스를 복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생존자들과 지역 경제 모두를 살리는 접근 중 하나죠.

방법 2. 현금 지원하기

식량 바우처를 나눠주고 있는 옥스팜 이라크 활동가/ 사진: 옥스팜

지역 경제 복구를 위한 옥스팜의 활동 중 눈에 띄는 것은 현금을 지원하는 활동(Cash Programming)입니다. 특정 상점이나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e-바우처나 ATM 카드, 또는 현금을 지원하는 방법인데요. 생존자들이 각자의 가계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직접 현금을 사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가족들이 생존을 위해 중요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내전이나 재난 후 생겨난 빚 때문에 위험한 일에 종사할 가능성을 줄여줍니다.
현금 보조금 지원은 생존자들 중에서도 집과 농장 등 모든 생계 수단을 잃었거나, 앞으로 살아갈 자금이 전혀 없는 취약 대상들을 중점으로 이루어집니다.

옥스팜 현금 보조금 지원 전, 신상정보를 체크하고 있는 이라크 모술 주민/ 사진: 옥스팜

현금 지원 방법은 시장기반 프로그램으로써 전 세계 인도주의 사업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활용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중 옥스팜은 현금 지원, 상품권(바우처) 배포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선두 기관에 꼽힙니다. 하지만 현금 지원이 모든 곳에 만능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지역이나 가족들의 상황에 맞춰 현금 외에도 씨앗, 사료, 가축, 동물보호·농업·사업 기술 훈련 등도 전략적으로 제공합니다.

방법 3. 사회 안전망 마련을 촉구하기

네팔 대지진 이후 담요나 텐트 등 겨울 준비 지원에 한창인 옥스팜 활동가들/ 사진: 옥스팜

사실 그 어떤 프로젝트들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정치 및 사회 시스템이 안정을 찾지 못하면 그 역시도 무용지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옥스팜은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 듣는 기관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정치인, 민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인도네시아 지진 재난 복구 현장/ 사진: 옥스팜

긴급구호 현장에서 식량, 현금 등을 제공하면서 이런 물품들이 절대 소수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법률 및 정책 제언 활동을 펼칩니다. 정책결정자들이 생존자들의 상황이 반영된 정책과 법률을 시행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더불어 민간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사회 안전망 서비스’를 촉진하기도 하는데요. 보험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지역 사회와 국가의 특성마다 다르게 적용되지만, 향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대비해 안전 장치를 확보하려는 취지입니다. 이를 통해 향후 갑작스런 파산이나 가계 경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주민들은 보험을 통해 조금 더 빨리 회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생존자들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옥스팜,
일방적인 도움을 넘어, 생존자들의 자립가능한 미래를 꿈꿉니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들로 말입니다.

블록체인이 캄보디아 농민들의 가난을 해결하는 방법

캄보디아 벼 농부들은 옥스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수확물 판매에 새로운 영향력이 생겼습니다 / 사진: 옥스팜

 

기술을 통해 ‘공정한 세상’을 꿈꾸는 블록라이스(Blocrice) 프로젝트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 캄보디아에 등장했습니다. 농부들이 수확한 곡식을 공정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캄보디아 Preah Vihear 북부 지방에서 불공정 거래에 취약한 농민들이 적절한 가격으로 곡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 거래’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블록라이스(Blocrice)입니다. 블록체인(Blockchain)과 쌀의 영어 이름(rice)를 합친 이름이죠.
옥스팜은 지난 8월부터 유기농 쌀을 재배하는 50명의 캄보디아 농민들과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블록라이스(Blocrice)는 농민협동조합과 수출업자, 쌀과자 제조업자, 구매자들 간의 공정한 계약을 장려하는 것을 중점에 둡니다. 각 이해 관계자들이 1차 구매 가격 · 거래량 · 운송방법 등 조건을 우선적으로 명시한 뒤 블록체인 플랫폼에 이를 등록하고, 계약 및 결제 기록을 남기면 농민들이 보다 투명하고 확실한 거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캄보디아의 농부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존 불공정 거래에 있어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들이었습니다.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은행 거래가 아닐 시 판매 수입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서 현금이 없는 지불이 이루어지더라도 가상 암호화폐 기술을 통해 확실한 거래를 성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캄보디아 노동 인구의 약 6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구매자들과 공정한 거래를 맺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저소득층 농민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많은 수의 농민들이 시장 가격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고금리 대출을 받은 이력으로 부채 탕감을 위해 농산물을 싼 값에라도 매각해야 한다는 강한 압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에라도 수확물을 판매하는 경우가 높습니다.

솔린 림(Solinn Lim) 옥스팜 캄보디아 사무소장은 “블록라이스를 통해 농민들이 계약의 주체로서 교섭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며 “이 플랫폼은 농민들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이라고 전합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50명의 농민은 현재 웹 기반 블록라이스(Blocrice) 시스템에 그들의 프로필 · 경작지 · 예상 수확량 등의 데이터를 등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범 프로젝트는 2019년 3월까지 진행되어 주요 수확 시즌인 우기에 수확한 쌀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시범 사업이 성공한다면 향후 전국적으로, 또 옥수수 · 캐슈너트 · 후추 등 다양한 작물시장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수출을 넘어 사회를 바꾼다

캄보디아 쌀 수출 업체인 암루라이스의 칸 쿤티는 옥스팜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 캄보디아 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수출을 늘릴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는 “캄보디아 농업에 투명성은 물론 거래추적과 경제분야 지식, 농민들의 문맹 퇴치 등 농업계 전반에 커다란 2차 수혜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옥스팜은 지역 내 다른 농업협동조합, 주 정부 및 민간 기업들을 대상으로 블록라이스 워크숍을 열며 지속적인 협업을 촉구할 예정입니다.

*캄보디아 쌀 산업 동향
지난 20년간 캄보디아의 쌀 수출량은 유럽 연합(EU)의 관세 면제조항인 ‘Everything But Arms’에 따라 크게 증가했습니다. 수확기인 2017년에 생산된 쌀 890만 톤 중 60만 톤이 해외로 운송되었으며, 그 중 절반 가량이 EU에 공급되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캄보디아 훈센 총리의 선출 이후, 캄보디아 내 불공정 거래로 인한 인권 문제를 지적하며 캄보디아를 EBA 계획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편, 중국은 캄보디아 쌀의 주요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베이징은 2016년 수입쿼터를 도입했으며, 2019년까지 연간 50만톤으로 규모를 확장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영문 보고서 보기

예멘 아트 갤러리 프로젝트

예멘 예술가들이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 – 지금, 예멘은 왜 평화가 필요한가요?

옥스팜은 “예멘, 천일 동안의 전쟁: 평화의 외침”이라는 아트 갤러리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예멘 전 지역의 예술가들에게 전쟁의 아픔과 희망, 그리고 전 세계를 향한 평화의 외침을 표현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난 3년간의 전쟁이 특히 여성과 소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선정된 예술작품은 예멘에서의 전시회를 시작으로 미국을 거쳐 한국에 소개됩니다.

“총 17점의 갤러리 예술작품은 전쟁 중에 작업이 진행되어 재료 부족과 신변 안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각 작품에는 창의적인 예술의 정신들이 기대 이상으로 담겨 있습니다. 특히, 왜 지금 평화가 필요한 지에 대한 표현과 더불어, 앞으로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선구자로서의 여성의 모습들도 압도적으로 잘 표현하였습니다.”
-콜레르 페어론, 옥스팜 인도주의 부국장

예멘, 천일 동안의 전쟁: 평화의 외침

어머니의 눈에 비친 비애(Pain in Mother Hamdah Eyes) - Ahmed Abdulla Hashem Jahaf
어머니의 눈에 비친 비애(Pain in Mother Hamdah Eyes) - Ahmed Abdulla Hashem Jahaf

이 작품은 예멘 마리브의 공습으로 6명의 가족을 잃은 어머니 함다(Hamdah)의 사진과 예멘의 지도를 통합하여 그래픽 디자인화한 작품이다. 여성의 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을 표현하고 있으며, 전쟁을 겪고있는 모든 예멘인들의 고통을 반영하고 있다.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예멘 여성(A Yemeni Woman’s Look into the Horizon) - Shihab Abdulbaset Ali Karman
수평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예멘 여성(A Yemeni Woman’s Look into the Horizon) - Shihab Abdulbaset Ali Karman

이 작품은 예멘의 전통의상인 Sana’ani sitara 의상을 입은 예멘 여성을 묘사한 작품이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예멘 여성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며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사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3년간 계속되어온 전쟁 속에서도 회복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예멘 여성들의 모습을 반영해주는 작품이다.

무제(Untitled) - Noura Abdulaleem Al-Absi
무제(Untitled) - Noura Abdulaleem Al-Absi

나(작가)는 그림 재료를 살 수 있는 돈이 없어서, 커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예멘 내전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의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 어떤 절망 속에 있더라도, 예술은 당신의 가치를 잊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암울한 나의 조국(Melancholy and Homeland) - Eyman Mohammed Ramadhan Yaqoub
암울한 나의 조국(Melancholy and Homeland) - Eyman Mohammed Ramadhan Yaqoub

이 작품은 내전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표현한 그림이다. 희망과 안전을 나타내주는 “엄마”라는 존재는 ‘예멘’이라는 특정 장소와 일반적인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그림에서 다뤄진 여성의 슬픔은 오랜 전쟁의 아픔을 표현해준다.

사나가 눈물을 흘릴 때(When Sana’a Shed Tears) - Saba’a Mohammed Ali Jallas
사나가 눈물을 흘릴 때(When Sana’a Shed Tears) - Saba’a Mohammed Ali Jallas

작품을 통해 ‘사랑, 평화, 그리고 희생’의 상징이 되는 여성을 그렸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눈물로 표현된 그녀의 고통을 다 잊게 해준 사랑과 연민, 그리고 평화의 상징이 그녀가 들고있는 촛불에 담겨있다. 예멘의 내전 속에서도 사랑과 희망은 우리의 삶에 계속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반영한 그림이다. 60x60 사이즈의 캔버스에 오일 페인팅으로 표현했다.

전쟁은 오직 우리를 강하게할 뿐이다(Your War Will Only Make Us Stronger) - Rowayda Abdulrahman Hussien Ahmed
전쟁은 오직 우리를 강하게할 뿐이다(Your War Will Only Make Us Stronger) - Rowayda Abdulrahman Hussien Ahmed

요르단에 살고있는 난민의 시각에서 예멘 전쟁을 바라보았으며, 작품을 통해 전쟁이 도시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어도 이를 겪어내는 사람들은 더 강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물동이를 들고 힘차게 걸어가는 예멘 여성을 통해 회복력과 강인함을 가진 그들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무제(Untitled) - Nada Abdulkareem Mohammed Al-Kaynaee
무제(Untitled) - Nada Abdulkareem Mohammed Al-Kaynaee

그림 뒷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여성과 앞 부분에 그려진 아이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무너져버린 사람들의 삶,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전쟁 속의 무관심(During War Ignorance is Established) - Marwan Ahmed Maresh Malhi
전쟁 속의 무관심(During War Ignorance is Established) - Marwan Ahmed Maresh Malhi

작품 속의 아이는 전쟁을 겪고있는 아이의 무고함을 보여준다. 무차별 공습과 대학살 속에서 살고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무고한 시민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비극과 고통의 하루하루를 살고있는 예멘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성. 그들의 삶에 찾아온 역경과 회복력(A Woman, Challenge and Resilience) - Umhani Abdulla Mohammed Al-Wareeth
여성. 그들의 삶에 찾아온 역경과 회복력(A Woman, Challenge and Resilience) - Umhani Abdulla Mohammed Al-Wareeth

지난 3년간, 예멘 여성들은 수많은 고초와 어려움 속에서 더 강해졌으며, 회복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은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예멘의 여성들은 전쟁으로 황폐해져가는 땅에서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와 용기, 결단력을 가지고 삶을 헤쳐나가고 있다.

삶의 쓴 맛(Bitterness of Living) - Nada Mohammed Ahmed Al-Kaynaee
삶의 쓴 맛(Bitterness of Living) - Nada Mohammed Ahmed Al-Kaynaee

이 작품은 전쟁이 낳은 여성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나의 시간이 끝난 것만 같은, 내 영혼과 행복이 모두 조각조각나 부서져버린 것만 같은 마음을 그림 속 얼굴과 제스처에서 표현해보았다.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어버린 발처럼 모든 희망과 꿈이 정지된 상황 속에서, 우린 어떤 평화의 꿈을 꾸어야 할까?

전사의 휴식(A Warrior’s Rest) - Angham Mohammed Hamood Al-Sarhi
전사의 휴식(A Warrior’s Rest) - Angham Mohammed Hamood Al-Sarhi

그림 속의 두 명의 여성은 내전으로 인해 자신의 고향집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이다. 현재 그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침 시간에 도로를 청소하고 핸드메이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바라는 건 호데이다(Hodeidah)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여성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녀들이 어려운 상황과 땡볕 속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쟁이 끝나 더 나은 삶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전쟁 속의 여성(Women in The Times of War) - Lamya’a Al-Buhairi
전쟁 속의 여성(Women in The Times of War) - Lamya’a Al-Buhairi

이 그림은 전쟁 속에 고통받고 있는 한 어머니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절망의 예멘에서 이 그림 속의 울고 있는 여성 역시 전쟁으로 집을 잃었고, 목숨을 잃었다. 자비없는 폭격과 살인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평화의 상징(Signs of Peace) - Thu Yazan Qayed Al-Alawi
평화의 상징(Signs of Peace) - Thu Yazan Qayed Al-Alawi

예멘 내전은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단란하던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던 비극적인 상황, 그나마 생존한 가족들은 길거리로 구걸하러 나오게 되었으며 많은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성매매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않는다. 여성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전쟁은 하루 속히 끝나야 한다. 평화을 향한 외침은 계속 될 것이며 그 과정속에서의 여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교육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계속 외칠것이며 우리 자녀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사위(Dice) - Khalid Hassan Yahya Al-Oqbi
주사위(Dice) - Khalid Hassan Yahya Al-Oqbi

이 그림은 예멘 여성과 소녀들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 어떠한지, 또 전쟁이라는 결과가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예멘 여성들은 물, 식량, 건강, 교육 등 기초적인 삶이 무너진 상태이며 이 그림을 통해 이러한 암울한 상황들이 느껴지길 바란다.

고통과 희망(Pain & Hope) - Nada Jalal Al-Saqaf
고통과 희망(Pain & Hope) - Nada Jalal Al-Saqaf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전쟁에서 가장 큰 부담과 휴유증을 치르고 있는 존재가 여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의 탄력성(회복력)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먼지가 쌓인 전쟁의 잔해 속에서 어린 딸을 껴안고 일어선 강한 여성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또 다는 그녀의 약한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표현하기 위해 ‘미래’에 관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여성의 회복력, 즉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희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나의 어머니, 예멘(Yemen, My Mother) - Marwan Abdulrahman Shuja’a
나의 어머니, 예멘(Yemen, My Mother) - Marwan Abdulrahman Shuja’a

나(작가)는 전쟁으로 인해 청력을 잃었다. 그렇기에 나의 유일한 소통 방법은 그림이다. 사실 이 그림을 통해 전쟁 때문에 바뀐 여성들의 삶을 전하고 싶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여성들의 역할은 가족들을 부양하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성 개인이 겪고 있을 아픔에도 불구하고, 예멘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 내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지키면서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림 속에는 예멘 여성의 인내와 고통을 동시에 담았다.

여성의 붓에 담긴 전쟁이란(War in a Woman’s Brush) - Lubna Hezam Abdo Zayd  Al-Buhairi
여성의 붓에 담긴 전쟁이란(War in a Woman’s Brush) - Lubna Hezam Abdo Zayd Al-Buhairi

전쟁 중 많은 것을 목격한 나로서는 전쟁으로부터 고통받는 여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전쟁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이 그림이라고 판단했고, 이는 그림의 내용에도 담았다. 전쟁의 실체 속에는 누군가의 고통, 특히 여성들의 고통이 따라온다. 그림이란 표현방법을 통해 한 여성이 다른 고통받는 여성을 그린다는 것이 내 그림의 모티브이다.

지난 4월 3일, 스위스 제네바 회의에서 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헤스(Antonio Guterres)는 예멘 내전의 인도적 지원을 위한 30억 달러의 모금을 국제사회에 요청했습니다. 옥스팜을 포함한 22개의 국제비정부기구(INGO)들은 전격 지지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옥스팜은 모든 것이 무너진 예멘의 암란(Amran)을 포함한 9개 지역에서 2015년 7월부터 현재까지 280만 명이 넘는 지역주민에게 물 공급 및 식량 구입을 위해 현금 및 푸드바우처를 제공하며 신속한 구호활동과 장기적 평화구축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후원자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은 식수 및 위생지원을 포함한 긴급구호, 자립을 위한 생계 활동 등 옥스팜 주요 사업에 사용됩니다.

아이들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떨어진 구호 물자 용기를 주워 앉아있는 스티븐(Steven)

스티븐(Steven)은 유일한 아동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시작한 전쟁에서, 총을 건네받고 싸우도록 강요받았던, 그 때의 그 전쟁터에서 말입니다.

매일 마음 속에 되뇌던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은 끝내 부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어려워지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나이 14살 때 말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먼지 가득한 학교 앞 공터에서 축구를 할 때, 스티븐은 바닥에 흩어져있는 커다란 통을 주워 앉아 구경합니다. 그 통은 바로, 헬리콥터에서 떨어진 구호물자가 담겼던 용기입니다. 이 용기들은 모닥불을 피울 때 활용되거나 의자로 쓰여지기도 합니다.

스티븐의 발목에 난 상처는, 그가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할 수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년 전, 치열한 전투에 참여하던 당시 총에 맞으면서 생긴 상처입니다. 그 때의 상처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밤마다 떠오르는 전쟁터의 총성처럼 그의 상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발목의 상처도, 제 마음도, 언제쯤이면 아물 수 있을까요?”

Photo: William Vest-Lillesøe, Oxfam IBIS
가닐리엘 마을 학교에 그려져 있는 남수단 국기

스티븐이 살고 있는 가닐리엘(Ganyliel) 마을은 남수단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지만, 대신 많은 소 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폭우가 매일같이 쏟아지는 우기에는 마을이 섬으로 변해 카누를 타야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누에르(Nuer)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몇 년 동안 딘카스(Dinkas)부족과 수많은 전투를 치뤘습니다. 창과 나이프로 치뤄지던 전쟁은 신식 총과 수류탄으로 대체되면서 더욱 폭력적인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 갈등은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2년, 누르 부족의 군대에서 전투원이 부족해지면서 스티븐은 12살의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끌려가는 스티븐을 보면서 그의 엄마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돌아온 지금까지도, 아들을 볼 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여전히 아프기만 합니다. 힘 없이 아들을 보내야만 했던 어미의 마음과 공동체의 슬픈 운명 속에서 말입니다.

“군대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소총을 건네받았어요.
어떻게 총을 쏘는지, 어떻게 적을 기습 공격하는지에 대해 배웠죠.”

무덤덤하게 말을 꺼내던 스티븐은 갑자기 고개를 푹 떨굽니다. 훈련을 마친 후 그는 바로 전쟁터로 보내졌습니다. 하루 종일 100km의 거리를 걷고 나서야 이웃 부족과 적군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키는대로 적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어요. 숨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우린 공격을 시작했죠. 그 이후 오랫동안 전투가 이어졌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목숨을 잃었어요.”

교육으로 시작된 변화

스티븐은 발목에 총상을 입었고, 결국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2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상처의 염증은 점점 악화되어만 갈 뿐, 전혀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은 자신이 ‘행운아’라고 말합니다. 가닐리엘 마을에 옥스팜 사무소가 생겨난 뒤, 아이들과 청년들을 위한 특별한 수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처럼 내전으로 제때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스티븐은 옥스팜이 설립한 도서관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는 예전보다 더 용기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전쟁과 갈등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용기’ 말입니다.

“우간다로 가고 싶어요. 거기엔 더 좋은 학교들이 많거든요. 의학을 공부해서 저처럼 전쟁 중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전쟁터에서 그는 자신보다 더 작은 소년이 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작은 체격에 맞지 않는 군복을 입고 간신히 총을 들고 있던 그 소년의 모습은 여전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그 아이처럼 전쟁 중 다치거나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스티븐. 자신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고 있을 그 아이들을 위해 말입니다.

가닐리엘 마을의 지도자인 존 탑 캉(John Tap Kang)은 모든 학생들이 어른들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학교에 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처럼 ‘남수단’을 위해서도, 아동 ‘개인’을 위해서도,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큰 미래의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전쟁과 질병같은 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어요. 하지만 ‘교육’으로 우리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에요.”
– 마을 지도자 존 탑 캉

옥스팜은 남수단에서 과거 소년병으로 활동했던 취약계층들과 소년, 청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 2007년 이후, 옥스팜 현장 사무소는 남수단 내전의 희생양이 되었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중 대부분은이 소년병 출신입니다.

▶ 보충 교육 프로그램은 8년의 학교 수업을 절반 정도의 기간 내에 배울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고학년 연령의 아동 또는 청년들은 빠른 기간 내에 교과과정을 보충하여 향후 정규 교육 과정에 편입할 수 있습니다.

▶ 옥스팜은 시에라리온(Sierra Leone)과 라이베리아(Liberia)에서도 소년병 활동 등으로 전쟁에 영향을 받은 아동 및 소년들에게 남수단에서와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현장, 그 곳에 옥스팜이 있습니다.
소년병 출신 아동 및 청년들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늘도, 옥스팜은 현장에서 희망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의 숨겨진 공신 “우리는 자원봉사자입니다.”

2018년 5월 12일부터 13일까지 구례군 지리산 일대에서는 전 세계의 굶주리는 이들을 돕기 위한 따뜻한 도전이 펼쳐졌습니다. 100km(12~13일, 38시간 내에 완주, 4인 1조 팀)와 10km(13일) 대회를 통해 800여 명의 참가자들이 걸음 걸음마다 따뜻한 의미를 느끼며 걷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성공적으로, 모두의 안전 속에서 끝마쳤습니다.

사실, 이러한 성료 뒤에는 현장에서 추위와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참가자들을 돕던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답니다!

바로 옥스팜 자원봉사자분들입니다!

옥스팜 자원봉사자분들은 옥스팜 현장 직원 및 구례 지역 관계자분들과 함께 옥스팜 트레일워커 현장 곳곳에서 작은 일부터 커다란 일까지 고루고루 책임감 있게 마무리하셨답니다. 특히, 영어통역과 사진 촬영 등 각자의 능력을 살려서 외국인부터 한국인 참가자들 모두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어주셨습니다. 덕분에 행사가 끝난 후, 800여 명의 참가자분들의 소감에는 여러 번 자원봉사자분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등장했습니다. 자원봉사자분들이 건넸던 말 한마디와 친절한 배려들이, 궂은 날씨에도 힘겨운 도전을 하고 있던 참가자분들에게 그 어떤 선물보다 따뜻하고 값지게 와닿았던 게 아닐까요?

17세 소년부터 회사원까지, 직업도 거주지도 다양했던 옥스팜 자원봉사자분들. 그들의 생생한 트레일워커 참여 후기를 지금 전합니다!

윤성일 봉사자님

대회 현장에서 윤성일 봉사자님

옥스팜 트레일워커라는 좋은 일에 동참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 준비하는 프로들도 힘든 규모의 커다란 대회를,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위해 기획하고 발로 뛰며 진행하는 직원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단순한 하이킹 대회가 아닌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배경, 국가, 문화, 관심사의 사람들이 모여 한 방향을 위해 간다는 것은 보기보다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플랫폼 사업이나 커뮤니티 빌딩을 했던 경험으로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더욱 좋은 문화와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실 것이라 믿고 응원하겠습니다. 도전에 임했던 모든 참가자분들께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고, 참가자들의 10만 걸음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용기 있는 걸음이었다고 믿습니다. 내년에는 참가자로서 꼭 행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최승우 봉사자님

옥스팜 캠페이너와 최승우 봉사자님(좌) / 결승선에서 최승우 봉사자님(우)

‘왜 이걸 하는 걸까?’ ‘도대체 왜 폭우가 쏟아지는 밤까지 100km를 걷는 걸까?’ ‘100km를 걷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1인당 10만원에 50만원이나 기부펀딩을 해내야 참여할 수 있는 고생 레이스를 왜 하는걸까?’ 라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던 그 때 ‘왜?’라는 생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영어봉사를 하러 구례까지 간다고 했을 때 ‘그걸 왜 해?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라고 했었습니다. 생각은 실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작은 실천으로라도 옮긴다면 그 행동이 진짜 변화를 만들수도, 그러면서 작은 의미라도 생겨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의미에 대해 공감한다 하더라도, 봉사활동이나 100km 걷기 등의 실천으로 직접 옮겨야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진로 고민을 하면서 생각만 많아지고 이루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제게,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특별하지는 않아도 뭔가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이런 작은 ‘해냄’을 느끼며 ‘변화’를 위해 함께 해주었던 모든 사람들께 고맙습니다.

“‘사람을 위한 사람의 힘!’
옥스팜의 슬로건처럼 진짜 사람들이 움직였을 때,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라면, 왜? 라고 묻기도 전에

마구 해버리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최승우 봉사자님과 구례 지역 자원봉사자님들

 

서진 봉사자님

고향인 구례에서, 영국생활 당시 인연이 있었던 옥스팜의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서진봉사자님

고향 구례에서 걸으며 기부하는 행사가 5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번쩍, 이유모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영어통역봉사 #구례 #트레일워킹 #국제구호기구, 이 키워드 단어들이 모두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기에 참여 신청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영어 통역 봉사자로서의 기회가 주어졌고, 행사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설레임을 안고 구례로 출발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팀 당 기부를 하면서 100km를 완주해야 하기 때문에, 건실한 체력 뿐만 아니라 팀워크와 깊은 이타심을 갖춘 사람들이 선수로 참여한 듯 했다. 행사 이틀 동안 비가 내리는 불편한 날씨 속에서도 선수들 뿐 아니라 수백 명의 운영자들과 서포터들이 한 마음으로 어우러지고 격려하면서 짧지만 격렬한 여정을 마쳤다. 누군가의 절박한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특별한 프로젝트여서 그런지 거의 잠도 못자고 비오는 밤에 종종거리며 야외 봉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함보다 잠시나마 만났던 인연들과의 이별의 아쉬움이 더 큰 시간이었다. 너무나 좋았던만큼 집에 돌아와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내년에는 가족들은 10km, 나와 친구들은 100km를 시도해볼 예정이다. 현재 체력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이기에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떨리는 가슴은 계속 진행형이다.

김지형 봉사자님

대회 시작 전 CPR 교육을 받고 있는 김지형 봉사자님

퇴근 길에 옥스팜 대면모금팀 설명을 듣고 후원자가 되면서, 우연히 옥스팜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통역 봉사활동을 통해서 느꼈던 보람을 그리워하던 중, 운 좋게 통역봉사활동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제가 직접 본 현장의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나와 너 모두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멋진 캠페인입니다. 활동 자체가 매우 유니크하고, 참가자 뿐만 아니라 봉사자도 활동적으로 함께 어울리면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가자들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38시간 동안 팀원들과 고생합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은 그러한 모습을 곁에서 보고 서포트를 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짐과 동시에 큰 힘을 얻습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통해서 저는 잠시나마 회사 생활에서 느끼기 힘든 큰 힐링을 받았고,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했던 자원봉사자님들과 현장 직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성헌 & 정주헌 봉사자님

왼쪽 정성헌, 오른쪽 정주헌 형제.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말 밤을 지새우며 봉사활동을 해준 소중한 인연들

어린 나이의 저에게 쉬운 경험은 아니었지만, 제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 봉사는 그렇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100km를 걷는 분들도 기부를 목적으로 참가하셨다는 점에서 놀랐고, 참가자분들의 뛰는 모습을 보고 저도 열심히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현장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저도 훗날 꼭 이런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화이팅)

유인조 봉사자님

50km 체크포인트에서 새벽 근무 중인 유인조 봉사자님(가운데 남성)

아마 제가 했던 봉사활동 중에서 가장 의미있고 기억에 남을만한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본인들과의 챌린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기도 했고, 그 계기로 봉사활동 중에도 최선을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충분한 자극이 되었고 앞으로의 미래 계획에 있어 큰 거름이 될 것 같습니다.

2018 옥스팜 트레일워커에서 만난 소중한 옥스팜 자원봉사자 분들, 그리고 그 분들이 비바람과 새벽 공기 속에서 나눠주셨던 따뜻한 온기와 미소는 대회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입니다.

봉사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 옥스팜은 최승우 자원봉사자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나에게 옥스팜 트레일워커란?” 그 대답이 뭐였냐구요? 바로, “사람들”이었답니다. 100km, 10km를 걷는 참가자들부터 그들이 돕고자 하는 지구편 굶주리는 사람들과, 그런 참가자들을 돕고 있는 많은 봉사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회이며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좋은 뜻으로 모여있는 옥스팜 트레일워커!

2018년 대회는 끝났지만, 이러한 많은 참가자와 봉사자분들이 모아주셨던 나눔의 손길은, 오늘도 전 세계 곳곳에서 옥스팜 현장 활동가들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2018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함께 해주신 모든 자원봉사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 옥스팜 트레일워커에도, 함께 해주실꺼죠? ^^

네팔: 히라의 삶을 바꿔준 ‘깨끗한 물’ 이야기

네팔 바이타디(Baitadi) 지역 서쪽 끝에 위치한 우물에서 물을 기르기 위해 기다리는 여성과 아이들

네팔 산간지역의 마을에서는 깨끗한 물이 극심하게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오염된 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실정입니다.

히라 보하라(42), 바이타디 지역 거주민(Baitadi, Nepal)

히라(Hira) 역시 서부 네팔에서 한참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4명 중 3명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하고 있는 마을이죠. 히라의 마을은 산악지대에 형성된 마을입니다. 대부분 네팔의 산악 지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일상 그 자체입니다. 그 어떤 지역보다도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도 합니다. 히라의 마을 또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모든 주민들이 오염된 물로 살아갑니다.

 

그 오염된 물이라 하더라도 얻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히라(Hira)는 하루에 400리터 정도의 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깨끗한 물은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저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 여러분의 집에 수도꼭지가 없다면? 또 여러분이 물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학교나 회사에 가는 대신, 수 시간을 걸어 물을 구하러 가야 하는 삶을 산다면 어떨까요? 아마 물을 뜨는 일 외에는 또 다른 삶의 목표나 꿈을 꾸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에 수백 리터의 물을 구하러 먼길을 가야 하는 것은 견딜 수 없이 힘든 삶입니다. 그렇지만 히라(Hira)와 같은 네팔의 많은 여성들에게 이러한 삶은 거부할 수 없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히라는 물을 구하기 위해 하루 14시간을 걷습니다.

그녀의 마을에는 물을 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보통 남성들도 걷기 쉽지 않은 길을, 먼 지역의 우물을 찾아 걸어야만 합니다. 특히 낮 시간에는 우물 물이 바닥 난 경우가 많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밤 중에 그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루에도 여러번 그 길을 왕복해야 하죠. 그녀가 등에 맨 물통에는 최대 50리터까지 저장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히라(Hira) 뿐만이 아닙니다. 많은 네팔 여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물을 구하러 갑니다.

“임신 9개월차에도 무거운 물을 등에 지고 걸었어요. 사실 육체적으로 무척 힘들고 걱정이 되었지만, 제 뱃 속의 아이에 대한 걱정이 더욱 컸죠.” – 키란(Kiran)
“허리가 너무 아플 때가 있어요. 50리터의 물이 정말 무겁거든요. 하지만 만약 제가 30리터의 작은 항아리를 사용한다면 가족 전체가 사용하기엔 한참 부족해요. 그러면 더 많이 다녀와야 할 지도 몰라요” – 바산티(Basanti)
“우린 밤에 물을 뜨러 가요. 매우 어둡고 춥죠. 하지만 잠을 줄여서라도 그 때 물을 떠와야 걱정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가끔 한 번에 50리터 정도의 물을 혼자 떠오기도 하죠.” – 고마티(Gomati)

바이타디(Baitadi)에 거주하는 고마티 보하라(47)와 시누이 바산티(Basanti)가 밤에 물을 뜨고 있는 모습

(좌)임신 9개월차인 키란 마하라(21)와 그녀의 아들 부페쉬(2)는 물을 뜨러 온 모습 / (우) 바산티 보하라가 우물터에서 물을 길러오고 있다

더 슬픈 사실은 히라(Hira)가 떠온 물이 오염된 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시설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겐 또 다른 선택권이 없습니다. 네팔 서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살기 위해서 오염된 물이라도 먹어야 합니다. 자주 설사병과 같은 수인성 질병에걸리는 이유입니다.

특히 설사병에 걸리는 주민들의 92%는 5살 미만의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이 병은 곧 생명과 직결되어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네팔 다르출라 지역의 락스미 조쉬(37, 왼쪽)은 2시간을 걸어 웅덩이의 물을 기르고 있다.
물은 아이들과 가축들을 위해 사용되지만, 오염되었기 때문에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오염된 물은 네팔 주민들을 병들게 합니다.

“제 아들은 발열, 감기에 자주 시달려요. 가끔은 물을 마시고 피부병이나 설사병을 앓기도 하죠. 사실 저희가 마시는 물은 정말 더러워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뭘까요? 그냥 물을 마시는 방법 밖에 없어요. 선택권이 전혀 없죠.” – 히라(Hira)

“제 9개월 된 아이는 2달에 한 번씩 자주 아팠어요.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해요. 이 어린 아이가 아파야만 한다는 사실이 속상해요.” – 바산티(Basanti)

피부병을 앓고 있는 다르출라(Darchula) 마을의 소년 램(Ram, 18)

 

깨끗한 물은 생명을 살립니다.

현재 옥스팜은 네팔에서 수도시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물과 위생 시스템을 개선시켜 각 가정과 마을의 건강 및 의식을 향상 시키고 있습니다. 깨끗한 물이 없다면, 언젠가는 건강한 사람들이 더 이상 마을에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후원자님들의 도움으로, 옥스팜은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그들이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히라(Hira)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그 날을 꿈꿉니다.

히라는 깨끗한 식수를 마셔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우리에겐 당연하게 느껴지는 깨끗한 물이, 히라에겐 남은 인생 전체를 변화시킬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제 꿈이 있다면, 저희 마을에 수도가 설치되어 우리 가족과 다른 가족들이 모두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되는 거에요. 그럼 완전히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 같아요.”

여러분의 후원으로 네팔 주민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후원자님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후원금은 식수 및 위생지원을 포함한 긴급구호, 자립을 위한 생계 활동 등 옥스팜 주요 사업에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