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활동가 인터뷰: “시신을 세는 일은 아이가 할 일이 아닙니다” – 마리넬 우발도

2023.12.08 561

기후 활동가 마리넬 우발도(Marinel Ubaldo) ⓒ Shawn Exilus/Oxfam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현장, 옥스팜 기후정의 캠페인 ‘Make Polluters Pay’에 함께하는 청년 활동가 4인이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50만 명의 서명서를 직접 전달했습니다. 기후 활동가 마리넬은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기후 행동을 위해 나선 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필리핀 어촌에서 태어난 어린 소녀가 어떤 이유로 두바이까지 찾아가 전 세계 기후 행동을 촉구하게 된 것일까요? 마리넬이 기후 활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10년 전 그날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기후 활동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16살이 되던 해 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마타리나오 해안을 덮쳤습니다. 그전까지 기후변화는 50년, 100년 후에나 일어날 일들로만 생각했어요. 이런 비극이 제 삶에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물 위로 시신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너지는 미래를 직접 목격하니 기후변화가 우리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깨달았습니다.”

태풍 하이옌이 강타한 마타리나오 해안에 선 마리넬 ⓒ Shawn Exilus/Oxfam

 

“태풍 하이옌의 생존자로서 도덕적 책임감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들의 눈을 부끄럽지 않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미래 세대가 기후재난 가운데 생존하는 것을 넘어,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원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겪은 경험을 제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캠페인 ‘Make Polluters Pay’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와 기업, 그리고 슈퍼리치에게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길이죠.”

ⓒ Stories4Change by Climate Tracker

 

제 고향 필리핀은 탄소 배출량이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타격은 심각합니다. 기후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고향이 걱정됩니다. 자원이 부족해 극한의 기후변화를 견뎌낼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어렵기 때문이죠.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가라앉는 일을 멈춰야만 합니다. 필리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손실과 피해 기금(Lost and Damage Fund)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부인 아버지의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는 마리넬과 가족들 ⓒ Stories4Change by Climate Tracker

 

대부분의 기후위기 피해지역 주민들은 부유하지 않으며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갑니다. 재난 상황 속에서 생존하는 것뿐 아니라, 생계 수단을 잃지 않고 온전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합니다. 기후위기 취약지역이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피해를 경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넘어, 기후재난으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이 있는 거대 오염원이 그들이 촉발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금전적 책임과 배상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후정의 실현이 가능할까요?
 

재난 위험 경감을 위해 맹그로브 나무를 키우는 마리넬과 그의 언니 ⓒ Stories4Change by Climate Tracker

 

“우리에겐 이미 승소한 경험이 있습니다. 2015년 필리핀 기후 활동가들과 함께 필리핀에 진출한 47개 화석연료 기업을 대상으로 탄소 배출량 조사를 요구하는 법적 소송을 제기했고, 긴 싸움 끝에 2022년 화석연료 기업이 기후변화를 촉진하고 필리핀 내 취약지역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필리핀 인권위원회 결의안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결의안을 근거로 전 세계적인 기후정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후행동을 이어가는 힘은 무엇인가요?
 

“제 내면에는 안전함을 느끼며 살고 싶은, 무엇이든 꿈을 꿀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고 싶은 아이가 존재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가진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고 싶은 아이가 있죠.”

미국 듀크대학교 환경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마리넬 ⓒ Shawn Exilus/Oxfamr

 
 

“제가 강인하고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 된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집, 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회복탄력성을 늘 유지하는 것도 지치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저 고향의 모래밭과 빗속을 뛰어다니며 놀고 싶은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폭풍이 몰아칠 때마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만 했죠.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시신들을 세던 어린 시절의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겪었던 일들을 다음 세대에 절대 물려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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