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불평등 해소,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 옥스팜 <불편한 교실> 중

2024.02.13 2761

ⓒ Oxfam in Korea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기생충>, <오징어게임>은
불평등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 교수, 옥스팜 <불편한 교실> 강연 중

K-팝, K-드라마, K-방역 등 한국의 문화산업과 의료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오랫동안 떼지 못한 불편한 꼬리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OCE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20년째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데요. 2003년부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자살률, 우울증, 범죄율 증가 및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불평등’을 꼽습니다. 실제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높은 주거비와 고등교육 학비 등 우리 일상은 불평등과 깊게 얽혀 있습니다.

1월 말, 옥스팜 한국사무소에서 불평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불편한 교실>이 열렸습니다. 불평등,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불평등 연구 전문가, 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 교수님의 강연을 통해 불평등의 현주소를 알아보았습니다.

ⓒ Oxfam in Korea

 


불평등,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불평등은 생존, 정치권력, 경제적 자원의 불균등한 상태를 말합니다. 생존은 기대수명과 건강 상태의 격차, 정치권력은 투표권과 정책결정권의 격차, 경제적 자원은 소득과 자산의 격차로 불평등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생존, 정치, 경제적 측면을 넘어 누릴 수 있는 문화생활의 질과 접근성 격차에 따른 문화 불평등, 인맥과 같은 사회자본의 격차로 인한 사회 불평등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불평등, 왜 문제인가요?

아무리 달려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는 과잉경쟁을 유발합니다. 과잉경쟁으로 인해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사회적 신뢰와 결속력 또한 저하됩니다.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지만, 행복지수는 50위 수준에 그쳤습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은 개인의 정신건강뿐 아니라 사회의 정치경제적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포퓰리즘과 혐오발언의 확산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 하락, 혼인율과 출산율 감소 등으로 인해 경제 성장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혐오발언, 저출산 등이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이기도 하죠. 

“여기는 쳇바퀴 위야.
제자리에 있으려면 계속 달려야 하지.
다른 곳에 가고 싶다면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 중


불평등은 한국만의 문제인가요?

불평등은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북반구의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 남반구의 국가들 간의 빈부격차는 여전합니다. 전 세계 불평등 수준은 서구 제국주의가 정점을 찍었던 20세기 초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세계적 불평등과 함께, 선진국·개발도상국 할 것 없이 국가 내 불평등이 악화되면서 극빈곤층의 고통은 가중되었습니다. 2014년 옥스팜은 <불평등 보고서>를 처음 발간하면서 ‘슈퍼리치(super-rich)’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세계 최상위 1%의 부유층이 세계 부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는 하위 50%가 소유한 부의 65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불평등이 증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평등은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 기업지배구조,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부의 조세정책과 사회복지제도, 선거제도와 투표율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불평등의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4 옥스팜 불평등 보고서 <불평등 주식회사>에서는 글로벌 대기업이 노동자보다 부유층 주주에게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하고,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되면서 부의 집중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대기업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생산 자동화와 노동 유연화 등을 통해 노동자 인건비를 줄여온 반면, 슈퍼리치의 연봉과 주주들의 배당은 늘렸습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이유로 세계 최상위 부유층 5인의 자산이 2배로 늘어났고, 인류의 60%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2024 옥스팜 불평등 보고서 전문 보기

한국도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3%,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소유하고 있는 부의 집중화 현상이 높은 국가에 속합니다. 1990년대 주요 대기업이 비정규직 정책을 도입했고, 영세자영업,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 비정형 일자리가 증가했습니다. 청년, 노동자, 빈곤층을 대변하는 대표 선출이 어려운 선거제도 속에서 저소득층의 관심과 투표율이 점점 낮아졌으며, 복지에 대한 지출은 줄고 부유층과 기업을 지원하는 조세정책이 늘어난 점 등을 부가 집중된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인구 고령화와 노인빈곤 문제까지 중첩되면서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불평등의 반대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평등’입니다. 평등이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중하고 대우할 때 가능합니다. 옥스팜은 불평등을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인 팔마비율*에 근거해, 하위 40%의 소득이 상위 10%와 같은 수준이 되면 불평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단, 기계적인 평등주의로는 불평등을 줄일 수 없습니다. 21세기 사회학자들은 새로운 복지국가의 원칙으로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보장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 실현(존 롤스), 단순 현금 분배가 아닌 기술과 경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예방적 사회정책(아르마티아 센), 합의 민주주의에 기반한 불평등 완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악셀 호네트)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팔마비율(Palma ratio)는 호세 가브리엘 팔마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명예교수가 개발한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로, 소득 상위 10% 인구의 소득점유율을 하위 40% 인구의 소득점유율로 나눈 값이다. 2019년부터 통계청은 소득분배 지표로 팔마비율을 공개하고 있다.


점점 악화되는 불평등,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까요?

200년 전에는 노예제도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70년 전 영국과 스웨덴에서 복지국가를 시작했을 때도 공교육과 국민연금을 허황된 꿈처럼 여겼습니다. 보통선거제도의 시작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연한 상식이 되었죠. 불평등 해소도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의 한 물리학자가 200년간의 사회운동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15% 이상이 한 목소리를 냈을 때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변화에 동의했을 때 법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와 몇 명의 청년 활동가들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불평등의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불평등을 연구하는 옥스팜,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 불평등에 대해 고민하고 이 자리까지 찾아온 시민 여러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1%가 모여 여론을 만드는 15%가 되고, 언젠가는 구조적인 변화를 만드는 25%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 Oxfam in Korea

 

“나의 지성은 비관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Antoio Gramsci), 이탈리아 철학가

강연의 마지막, 김윤태 교수님은 불평등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를 이탈리아 철학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명언으로 설명하셨는데요. 불평등한 현실을 이해할 때는 비판적인 태도로 냉철하게, 하지만 해결책을 고민하고 나아갈 때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노예제도 폐지, 보통선거제도와 공교육 도입 등은 인류의 선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불평등의 문제도 힘을 모은다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옥스팜은 80년 넘게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2014년부터는 1월에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맞춰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하고,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전 세계 리더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옥스팜의 불평등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1%의 힘이 되어 주세요. 변화는 여러분의 행동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2월 20일까지 구독을 신청하시면 추첨을 통해 옥스팜 굿즈 박스를 보내 드립니다.

‘공정한 세상을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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